질럿 마스터 이야기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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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럿 마스터 이야기
{np} 칠십여 명의 사람이 참석한 장례식의 식후 행사는 그대로 교단의 총회가 되었다.
본시 다른 성직자나 교단과 왕래가 없는 폐쇄적 성격이 짙은 단체이니 외부 손님은 거의 없었고,
{np} 고인의 친척 몇이 친족의 의무감으로 참석했고, 알고 지내던 이웃 사람이 몇 왔으며, 그래도 마스터가 죽었으니 담당 지역의 영주가 사람을 보내 관례상의 의무를 다했다.
{np} 그렇게 온 사람들은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서둘러 인사를 남기고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질럿 교단에 속한 내부자였다.
그리고 이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럿이기도 하였다.
{np} 딱 한 명 외부인으로서 이 자리에 끝까지 남은 사람이 있기는 했는데 그 사람 역시 딱히 친분이 두터워서는 아니었다.
프레비Phrevy란 이름을 지닌 중년 남자는 인퀴지터로서 인퀴지터 마스터 토마스 이코노스타시스의 명령으로 교단의 수좌이자 질럿 마스터가 공석이 된 상황에서 총회의 진행을 지켜보기 위한 남은 사람이었다.
{np} 질럿 교단은 외부인은 물론이고 다른 성직자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인퀴지터처럼 성직자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서로 볼 일도 거의 없었다.
{np} 만약 오늘 총회에서 질럿 마스터가 선출되면 그가 그 선출과정이 적법하고 적절했음을 증명하고, 인퀴지터 마스터에게 보고하고, 왕국의 관련 부처에도 전달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
{np} 질럿 교단의 종주이자 질럿의 마스터를 뽑는 과정은 대대로 이렇게 교단 내부에서 선출된 인물을 인퀴지터가 여신의 다른 모든 교단을 대표하여 심사하고 인지한 후 국왕에게 알리면, 조정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사실을 추인하여 임명장을 보내 마무리하였다.
{np} 질럿 교단의 차기 종주이자 마스터는 보통 전대 마스터가 사망하거나 은퇴하기 전에 미리 내부에서 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외부인인 인퀴지터가 형식상으로는 몰라도 실질적으로 새 수장이 선출되는 과정을 며칠 동안 지켜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np} 하지만 이번 총회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파견된 인퀴지터 프레비를 포함하여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총회가 오늘을 넘기고 여러 날 동안 진행된다고 하여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각오를 하고 참석하였다.
{np} 더하여 사상 최초로 교단 총회의 의장 역할이 외부인인 인퀴지터 프레비에게 넘어간 총회이기도 했다.
이것은 질럿 교단의 내부 알력 싸움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np}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질럿 교단은 내부에서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었고, 이 두 파벌의 생성과 대립은 교단의 역사 자체의 길이와 거의 동일했다.
{np} 질럿 교단은 잃어버린 여신을 회복하자는 교의를 지니고 있었고, 잃어버린 여신은 라이마와 유라테가 대표적이었기에 라이마 여신을 먼저 수복하자는 파벌과 유라테 여신이 먼저라는 파벌로 나뉘었고, 양측은 나름대로 논리와 입장이 있었다.
{np} 그에 더하여 달리아 여신을 우선시하는 극소수의 질럿이 존재하지만, 다른 파벌이 삼사십 명의 인원인데 비하여 이들은 서너 명이라 별 영향력이 없었고, 소수자들 역시 때에 따라 이쪽도 갔다가 저쪽도 가곤 했다.
결과적으로 고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유라테 혹은 라이마 전공에 달리아 부전공 정도의 입장에 처해있었다.
{np} 이런 갈등이 오랜 되었어도 질럿 교단은 분열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일단 그들은 여타 교단에 비하면 소수자라 더욱 작은 단체로 갈리는 일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여신 찾기를 우선한다고 해서 다른 여신을 찾을 기회가 왔을 때 나 몰라라 하지도 않았다.
{np} 교단의 최종 목적은 여신 찾기이지 특정 여신 찾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존재하는 다른 여신들과 그에 속한 교단 그리고 다른 성직자 계열들의 권면과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np} 질럿 교단을 좋아하지 않는 다른 여신의 교단이나 성직자들도 실종된 여신을 찾아야 한다는 대의에 반대할 수 없었고, 마음으로 공감하든 체면상이든 질럿 교단을 돕지 않을 수 없었다.
{np} 따라서 질럿 교단 역시 내부의 갈등을 외부로까지 공공연하게 만들어 지원이 끊기는 일은 그렇지 않아도 소수자이고 열악한 교단의 환경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었기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np} 지지난번 총회에서는 라이마 우선주의 파벌의 중심이었던 데이빗 탈David Tal이 교단의 수좌이자 질럿 마스터로 선출되었다.
유라테 우선주의 파벌에서는 불만이 없지 않았으나 유라테 파벌의 유력자의 딸 나오미Naomi가 데이빗과 총회 전에 결혼하였기 때문에 양 파벌의 분쟁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np} 그리고 그 후 잠시 동안은 양측의 대표적 인물의 결혼과 데이빗의 안정적인 교단 운영으로 수 세기를 끌어온 갈등이 점차 완화되는 듯했다.
데이빗 탈은 교단의 안정화로 질럿들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준비가 되자 라이마 여신 추적에 박차를 가하였다.
{np} 그리하여 하나의 단서를 발견하였고, 소수의 질럿을 이끌고 그것을 추격하였다.
그러나 이 단서는 불행히도 진짜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라이마 여신의 뒤를 쫓는 또 다른 무리가 있었고, 이들과 조우한 데이빗 탈이 그만 살해당하고 말았다.
{np} 데이빗 탈이 사망하자 질럿 교단은 깊은 슬픔과 함께 새로운 분열을 맞이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나오미 탈이 사망한 남편을 계승하여 질럿 마스터가 되었으나 데이빗 탈을 잃은 라이마 파벌에서는 그녀 때문에 혹은 그녀를 아내로 맞은 탓에 우리 데이빗 죽었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np} 이런 분위기에서 나오미 탈은 몇 년간 질럿 교단을 추스르다가 내부의 압력과 개인적 소망이 합쳐져 다시 라이마의 추적과 남편을 살해한 범인의 추적에 나선다.
이 두 가지 사안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기에 따로 추적할 필요가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나오미 탈 역시 남편의 살해범과 그가 속한 무리에게 희생당하였다.
{np} (훗날에 밝혀지지만 이 두 사람의 살해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자는 에보니폰이었다.
다만 엘리자 탈이 부모의 살인범이 누구인지 안 것은 무척 먼 훗날의 일이었고, 그 시점에서 에보니폰은 이미 사망하였다)
{np} 그리고 그 두 번째 죽음의 결과가 금번의 장례식과 오늘의 총회가 되었다.
따라서 라이마 우선주의 파벌이나 유라테 우선파벌이나 상대에 대해 감정이 있었다.
{np} 너희가 그렇게 재촉하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나오미 탈이 무리하게 추적에 나섰겠느냐 라는 처지와 애초에 데이빗이 나오미와 결혼하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입장이 양측 극단주의자들의 태도였다.
{np} 물론 양측에는 그 정도까지 심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들 역시 나름대로 슬픔과 원망이 없지는 않았기에 오늘의 총회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었다.
파견된 인퀴지터 사회자 프레비에게 가장 먼저 발언을 신청한 질럿이 나서서 발언했다.
{np} [저는 가장 오랜 기간 교단에 봉사한 경험과 연륜이 높은 질럿이 차기 마스터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에 적합한 사람은 라이마 우선파벌에 있었다.
다른 질럿이 발언권을 요청하여 얻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np} [연륜과 경험이 높은 분도 좋지만, 가장 강하고 수련이 깊은 질럿이 마스터에 오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스터가 실력에서 다른 질럿에게 뒤쳐진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np} 그 말에 해당하는 강자는 유라테 우선파벌에 있었다. 양대 파벌이 각자 그들이 내심 작정한 사람을 내세우자 더는 발언자나 추천자가 없을 것 같았지만, 또 다른 사람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np} [우리 질럿 교단 수 세기의 역사에서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임자가 사망한 일이 연달아 두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이해서 우리 역시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교단의 수좌를 선출하는 문제를 고려하자고 저는 감히 제안하는 바입니다.]
{np} 여기저기서 그것이 뭐냐는 질문이 터졌다.
발언자는 침착하게 준비한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 교단은 수 세기 동안 잃어버린 여신을 찾는 과업을 해왔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어쩌면 우리 교단이 너무 독자적이고 터무니 없이 높은 자부심을 지닌 탓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np} 사방에서 그건 다른 성직자들과 교단들이 현실에 만족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깨닫지 못하거나 게으른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는 종류의 주장과 고함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퀴지터 프레비가 장내를 조용하게 정리하자 발언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np} [여러 교단 형제분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도움 혹은 적어도 그들이 따르는 다른 여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발언자는 이번에는 그 말에 뒤따를 반론을 스스로 먼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np} [솔직히 다른 여신들께서는 라이마의 행방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신들께서 인간의 여러 질문에 답변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가운데는 우리가 모르는 사연도 있으니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해도 우리가 그간 노력해온 일 자체가 대견한 일입니다.
{np} 다른 성직자들이 그들을 돌보시는 여신에 품에서 만족할 때 여신의 부재를 누구보다 크게 마음 아파하고 애써온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 정도는 오라클 마스터의 신탁에 기대보는 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어쩌면 여신께서도 위기에 처한 우리 교단에 길을 보여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np} 질럿 가운데 누군가가 반론하였다.
[여신께서 인간의 일에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계시다고 하여 인간의 선택에 개입하시지는 않소. 그렇다면 여신께서는 국왕께서 승하하실 때마다 누가 왕족 중에서 가장 명군의 자질이 있는지 알려주셨을 것이오.
{np} 아니 굳이 왕족일 필요도 없었소. 모든 인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왕의 자질을 지닌 자를 알려주셨으면 간단한 일이지. 아니지 아니야. 그냥 여신께서 왕재를 키워서 우리에게 보내주셨으면 될 일이오. 심지어 차라리 아무 여신께서나 그냥 직접 왕좌에 앉아 우리를 다스리는 일은 어떻소?
{np} 그러면 차기 국왕을 고민할 필요도 없지. 그대는 질럿이자 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어찌 그런 일이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말이오?]
{np}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200년전 이넬 1세께서는 신탁으로 지명된 최초의 국왕이셨습니다. 그 전 국왕이었던 올루켈 국왕이 최초로 여신의 개입에 의해 퇴위된 뒤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외적인 상황과 필요한 경우가 있는 법입니다.
{np} 우리의 신학과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여신들께서 인간의 의지를 중시하시지만 그것 때문에 꽉 막힌 분들도 아닙니다. 그러니 물어봅시다. 신탁에 의지합시다. 답을 아니 주시면 다시 지금의 상황으로 돌아오는 것뿐.
{np} 약간의 시간 말고는 아무 것도 손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여신께서 통례를 깨고 신성한 개입을 실행하신다면 행여 거기에 반대하는 교우가 우리 질럿 교단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np} 인퀴지터 즉 이단심판관의 역할이 본분인 프레비가 장내를 죽 훑었다.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찬성하거나 최소한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분위기였다.
그 때 누군가 발언권을 요청했다.
{np} 정식 질럿이 된 지 심지어 성인 연령에 도달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여자가 그 요청자였다.
엘리자 탈, 이번에 죽은 질럿 마스터를 모친으로, 그 전에 죽은 질럿 마스터를 부친으로 둔 그녀가 발언권을 얻어 말했다.
{np} [신탁을 받자는 의견에 찬성합니다. 다만 저는 한 가지를 요청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 신탁을 요청하는 질문의 대상을 광범위한 누구가 아니라 저 엘리자 탈이 다음 질럿 마스터로 적합한지를 물어보자고 요청합니다.
{np} 앞서서 다른 교우분들이 추천하신 경험과 연륜 혹은 깊은 수련과 강인함에는 못 미치는 어린 여자일지 모르나 그럼에도 돌아가신 부모님이자 이 교단의 마스터들이셨던 제 부모님이 꿈꾸던 교단의 화평이라는
{np} 내부의 목표와 여신의 회복이라는 교단의 진정한 목적을 동시에 이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제 장대한 조망이 과연 실현될 것인지 묻고자 합니다.
{np} 만약 제게 그런 신탁이 내려진다면, 지금 이 자리에 두 가지 다른 생각을 지니고 계신 교우분들의 양측에서 절반씩 피를 물려받은 제가 공평하게 전자의 목표를 훌륭하게 후자의 목적을 달성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np} 여러 교우분들이 이 신탁을 묻는 일에 동의하고 그 질문의 내용을 제가 말씀 드린 대로 인정하고, 여신의 축복이 제게 있어 그 신탁이 저를 가리킨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
{np}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런 웅성거림이 오고 가다가 몇 사람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가 사회자인 인퀴지터 프레비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그렇게 여러 집단을 대표하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은 인퀴지터는 프레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np} [오라클 마스터를 통해 여신의 신탁을 요청한다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하였소. 그리고 그 내용도 엘리자 탈의 주장대로 이뤄질 것이오. 반대하는 질럿이 있다면 지금 말하시오.]
잠시 시간이 주어지고 다른 의견이 없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np} [좋소. 그럼 신탁을 받도록 하겠소. 다만 엘리자 탈은 만약 신탁이 거부되거나 신탁이 내려지더라도 그 내용이 그녀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후보의 권리를 독점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러 질럿 교단원들의 의견이 있었음을 이 자리에서 명확히 하는 바이오.
{np} 이것으로 일단 이번 총회는 휴회하고 신탁의 절차를 마친 후 재개하도록 하겠소.]
그리고 3일후 교단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성직자와 신학계를 놀라게 할 신탁이 오라클 마스터를 통해 제시되었다.

{np} 그 결과로 앨리지 탈이 질럿 교단의 수장이자 차기 질럿 마스터에 올랐다.
비록 이 젊은 처녀의 앞길에 있는 것이 마스터의 영광이 아니라 가혹하기 짝이 없는 짐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Description

질럿 마스터인 엘리자 탈에 관한 이야기. 마우스 우클릭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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